
색이 유난히 선명했을 것이다.
과일 꿈은 그렇게 남는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흐릿한데 그 붉은색이나 초록색만 또렷하다. 그리고 태몽인가 싶어서 검색을 하게 된다.
옛 태몽 기록에 과일이 많이 나오는 건 사실이다. 그런데 그 목록을 열어보면 좀 당황스럽다. 무슨 과일이냐로 나뉜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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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었는지가 성별을 갈랐다그 기준이 어디서 왔는지도 적혀 있다그래서 성별은 알 수 없다옛 목록에 '따는' 항목은 없다익은 과일, 안 익은 과일, 상한 과일과일을 먹은 꿈과일나무가 집이나 마당에 있던 꿈정직하게 얘기하면자주 묻는 것들익었는지가 성별을 갈랐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태몽 항목에는 각 지방에서 조사된 태몽 형상이 성별로 정리되어 있다. 식물류를 옮기면 이렇다.
남아 쪽 — 붉은 고추, 호두, 밤, 대추, 인삼, 옥수수, 무, 송이버섯, 가지, 고구마
여아 쪽 — 꽃, 애호박, 푸른 참외, 오이, 사과, 밤송이, 꼭지 떨어진 과일
나란히 놓고 보면 규칙이 보인다.
남아 쪽은 붉은 고추, 여문 밤, 마른 대추다. 여아 쪽은 애호박, 푸른 참외, 밤송이, 꼭지가 떨어진 과일이다.
같은 밤인데 여물면 남아고 밤송이면 여아다. 참외도 익으면 남아 쪽 감각인데 푸르면 여아다.
종류가 아니라 상태다.
루미
"여기서 좀 걸리시죠?
왜 익은 게 남자고 안 익은 게 여자냐고요.
그거, 백과사전이 직접 적어놨어요. 별로 유쾌한 얘긴 아니에요."
그 기준이 어디서 왔는지도 적혀 있다
백과사전은 태몽에서 남녀를 가른 기준을 이렇게 정리한다.
대와 소, 흑과 백, 양성과 음성, 완성과 미완성 같은 상대적 개념이 남녀 구분의 기준이 되었다는 것이다.
큰 쪽, 여문 쪽, 완성된 쪽이 남아였다. 작은 쪽, 덜 익은 쪽, 아직 안 찬 쪽이 여아였다.
푸른 참외와 꼭지 떨어진 과일이 여아 쪽에 놓인 이유가 그거다. 미완성 자리다.
그리고 백과사전은 이 분류의 배경도 숨기지 않는다. 부계사회의 조건, 노후 생계를 자식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던 사정, 남존여비의 구습이 남아 선호로 이어졌다고 적어놓았다.
게다가 이 구분마저 지역에 따라 뒤집혔다. 경기도에서 남아로 읽던 대추 꿈을 경상도에서는 여아로 읽었다.
같은 논리가 달꿈에서도 그대로 나온다. 거기서는 꽉 찬 달이 남아고 반달이 여아였다.
기록으로서는 볼 만하다. 예측으로 쓸 물건은 아니다.
그래서 성별은 알 수 없다
이건 분명히 해두겠다.
꿈으로 임신 여부나 아이의 성별을 알 수는 없다.
백과사전도 태몽 습속이 과학이 발전하고 합리적 사고의 영역이 넓어지면서 급속히 자취를 감추고 있다고 직접 적어두었다. 조사된 태몽 내용의 상당수가 성별 구분에 몰려 있다는 것도 함께 지적해놓았다.
지금 임신을 기다리거나 확인하고 싶어서 이 글을 찾아 들어오셨다면, 확실한 방법은 따로 있고 그쪽이 훨씬 정확하다. 태몽 이야기는 대개 일이 벌어진 뒤에 붙는다. 아이를 낳고 나서 되짚는 순서다.
태몽 전반은 아기 꿈 쪽에 정리해두었다.
옛 목록에 '따는' 항목은 없다

여기는 정직하게 쓰겠다.
과일을 따는 행위를 따로 다룬 옛 항목은 확인하지 못했다. 요즘 꿈풀이에서 "따야 내 것이 된다"는 식으로 말하기도 하는데, 원문에 그런 구절이 잡히지 않는다.
대신 있는 건 이런 것들이다.
- 과일나무가 많은 곳을 지나가면 횡재를 한다
- 과수원 안에 들어가면 크게 재물이 생긴다
- 과일나무에 열매가 많이 익으면 자손이 편안하다
- 문 안에 과일나무가 나면 자식을 얻는다
한국 쪽 기록도 같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꿈 항목의 식물 항목에 과일나무 많은 곳을 지나가면 횡재를 한다고 적혀 있다.
지나가기만 해도 된다.
손에 넣는 것을 조건으로 걸지 않았다. 그 시절 과수원은 그 자체로 재산이었으니, 그 안에 들어섰다는 것만으로 이미 그림이 완성됐던 것 같다.
익은 과일, 안 익은 과일, 상한 과일
루미
"무슨 색이었어요?
옛 목록이 과일을 볼 때 제일 먼저 본 게 그거예요.
종류는 그다음이고요."
전통적 해석에서 익음은 확실히 좋은 쪽이다. 과일나무에 열매가 많이 익으면 자손이 편안하다고 적혀 있다. 앞서 본 태몽 분류에서도 여문 쪽이 상위에 놓였다.
안 익은 과일을 흉하다고 적어둔 항목은 확인되지 않는다. 태몽 분류에서 여아 쪽으로 놓였을 뿐 나쁘다고 한 건 아니다. 이 차이는 구분해두는 게 맞다.
상한 과일이나 벌레 먹은 과일을 다룬 항목도 잘 안 잡힌다. 나무가 시들면 흉하다는 항목은 있는데 열매 쪽은 없다. 나무 쪽은 나무 꿈에 정리해두었다.
현대 심리학 관점에서 익음과 안 익음은 대체로 때가 됐는지의 이미지로 읽는 해석이 있다. 준비된 것과 아직인 것.
여기서 갈리는 건 그때 기분이다.
- 먹고 싶었는가
- 아직이라고 느꼈는가
- 아까웠는가
세 번째가 남았다면 상한 과일 쪽일 텐데, 그건 옛 기록보다 아까웠다는 감정 자체가 정보다.
과일을 먹은 꿈
전통적 해석에서 먹는 장면은 항목이 갈린다. 음식을 먹는 항목은 여럿인데 과일만 따로 떼어 적어둔 구절은 잘 안 잡힌다.
관련해서 가장 가까운 건 태몽 쪽이다. 백과사전은 태몽의 특징을 정리하면서 신체적 접촉을 짚어놓았다. 어떤 태몽이든 품 안에 들어온다든지, 가지고 온다든지, 깨문다든지 하는 접촉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먹는 장면이 태몽 이야기에 자주 등장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보기만 한 것과 입에 넣은 것은 다른 자리다.
같은 문법을 별 꿈에서도 봤다. 떨어지기만 한 별은 송사인데 품에 든 별은 귀한 자식이었다.
현대 심리학 관점에서 먹는 장면은 받아들임의 이미지로 읽는 해석이 있다. 다만 이건 상징 해석이지 검증된 예측이 아니다.
맛이 기억난다면 적어두면 좋다. 꿈에서 맛까지 남는 경우는 드물다.
과일나무가 집이나 마당에 있던 꿈
전통적 해석에 항목이 있다. 문 안에 과일나무가 나면 자식을 얻는다는 구절이다.
나무가 난 자리로 길흉을 가른 항목들과 같은 계열이다. 지붕 위 소나무는 좋고 우물 위 뽕나무는 근심이었다. 과일나무는 문 안쪽이 좋은 자리였다.
현대 심리학 관점에서 사는 공간에 뭔가 자라 있는 장면은 대체로 안에서 생긴 것의 이미지로 읽는 해석이 있다. 밖에서 온 게 아니라 그 자리에서 난 것이다.
정직하게 얘기하면
루미
"과일 꿈은 무조건 태몽이라는 얘기, 검색하면 잔뜩 나오죠.
옛 목록에 과일이 태몽 형상으로 들어 있는 건 맞아요.
근데 같은 목록에서 푸른 참외는 여아라고 적혀 있고, 그 기준이 '미완성'이었어요.
어떤 시대의 분류인지는 짐작이 가시죠?"
전통 해몽과 현대 심리학은 근거의 종류가 다르다.
옛 기록에서 확인되는 건 과일이 익음과 안 익음으로 갈렸고, 과수원에 들어서는 것만으로 길하게 봤으며, 태몽 분류에서 상태가 성별의 기준으로 쓰였다는 것까지다. 그리고 그건 예언이 아니라 그 시대 사람들이 세계를 읽던 방식이다.
백과사전도 해몽 목록을 늘어놓은 뒤에, 이런 풀이들은 여러 사람의 체험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지 일정한 이론적 근거를 가진 건 아니라고 직접 적어두었다.
몇 가지는 분명히 해두자.
과일 꿈으로 임신이나 성별을 알 수 없다. 옛 분류는 기록이지 근거가 아니다.
"과일을 따야 좋다"는 얘기는 옛 문헌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오히려 지나가기만 해도 된다고 적혀 있다.
안 익은 과일이 흉하다는 항목도 없다. 태몽 분류에서 다른 쪽에 놓였을 뿐이다.
과일 꿈과 로또 번호 사이에도 확인된 연관이 없다.
자주 묻는 것들
과일 꿈은 태몽인가요. 옛 태몽 형상 목록에 과일이 많이 들어 있는 건 맞다. 하지만 꿈으로 임신이나 성별을 알 수는 없다.
빨간 과일이었어요. 옛 태몽 분류에서 붉고 여문 쪽은 남아 항목에 놓였다. 다만 그 기준이 완성과 미완성이었고, 지역에 따라 뒤집히기도 했다.
과일을 땄어요. 따는 행위를 따로 적어둔 옛 항목은 확인되지 않는다. 대신 과수원을 지나가는 항목이 재물 쪽에 있다.
과일을 먹었어요. 태몽 기록에서 접촉은 중요하게 다뤄진다. 깨물거나 가져오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맛이 기억난다면 적어둘 만하다.
상한 과일이었어요. 옛 항목이 잘 안 잡힌다. 그때 아까웠는지 아무렇지 않았는지가 오히려 정보다.
안 익은 과일은 나쁜 건가요. 나쁘다고 적힌 게 아니라 여아 태몽 쪽으로 분류됐다. 지금 기준으로 그대로 쓸 분류는 아니다.
과일 꿈이 오래 남는 이유는 색 때문이다. 꿈에서 색이 또렷하게 남는 경우는 생각보다 드물다.
그러니 그 색 자체가 제일 큰 정보다.
오늘 할 일은 세 줄이다.
- 과일이 익어 있었는가
- 나는 뭘 했는가 — 봤는지, 손에 들었는지, 먹었는지
- 무슨 색이었는가
몇 주 쌓아보면 보인다. 색이 선명한 꿈은 대체로 뭔가 정해지는 시기에 몰린다.

색만 남은 꿈은 적어두기 좋다. 한 단어면 되니까.
그리고 그 한 단어가 몇 달 뒤에 제일 잘 읽힌다.
꿈부적은 적어둔 꿈의 장면과 일간(日干) 오행을 함께 보고 오늘의 색과 배경화면을 만든다. 해몽을 대신 해주는 앱이 아니라, 흐려지기 전에 적어두게 만드는 쪽에 가깝다.
어젯밤 그 색이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다면.
→ 꿈부적에서 오늘 꿈 기록하기
참고자료
- 태몽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지방 조사 태몽 형상의 식물류 성별 분류, 완성과 미완성의 구분 논리, 신체적 접촉이라는 태몽의 특징, 지역별 해석 차이, 남아 선호의 사회적 배경
- 꿈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민속신앙 해몽 비법 식물 항목, 해몽의 두 가지 태도
- 원판 『주공해몽』 수목·과수 항목 · 과수원과 열매 관련 구절. 널리 인용되는 원문 구절을 옮긴 것으로, 원본 판본 대조는 하지 않음. 중국 전통 해몽 문헌이며 한국 민속 기록과 계통이 다름
- 현대 수면·꿈 심리학 연구 일반